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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성령충만 100서

김천북부교회(증산면) 2024. 11. 20. 10:02

(35) 성령충만 100서 

성령충만 100서

기독교인들이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너무나도 똑같아서
아니 그 보다 더 심해서, 세상에 기준이 되어야 할 기독교인들이
그 기준점을 잃어버려서, 성경 말씀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데
세상속에서 답을 찾아서 빨리 빨리 해결해 나아가니
너무나도 급속도로 무너져 내리는 교회와 세상을 보며

다시 기준점이 되어 교회와 세상을 회복시켜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준비하였습니다.
제가 뭐가 되어서가 아니라 그런 생각들이 절실하게 들었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저 자신 조차도 성령충만한 삶을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하나씩 하나씩 예수님과 동행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누구라도 쉽게 접근하여
해 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유기성 목사님의 예수님 동행하는 일기를 쓰듯이
먼가 답은 제시해 주시지만 나 자신에게 적용하면 힘든 그런 하기 싫은 숙제같은 것이 아니라
작은 변화의 시작으로 인해 성령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그런 운동
그런 마음으로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신앙의 관점이니 참고만 하시고 각자 자신의 삶에 맞게 
만들어 보시고 자신의 삶에 맞게 적용해 보세요.
어쨋든 기독교인인 내가 변해야 교회와 세상이 변합니다.
같이 기도하며 시작해 봅시다.

(35) 성령충만 100서 

히브리서의 허다한 증인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유기성 목사님 설교를 듣고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나를 보고 계신데
나와 함께 지내다가 먼저 천국을 가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도 나의 삶을 보고 계십니다.

누가 나의 속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이 얼마나 식은 땀 나는 일입니까?
그런데 주님이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고 계신데 그것은 그렇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먼저 회복되어져야 하는데
주님과의 관계에 앞서 내가 잘 알던 분이 천국에 가서 나의 삶을 보고 있다고 하니
이것은 조금 다릅니다.

물론 먼저 보낸 분들은 눈에서 멀어지면 잊혀지지만
어느날 문득 예수님이 보고 계신다는 사실과 같이 그 분 또한 나의 삶을
은밀한 삶을 보고 있다고 하면 좀 불편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 불편함이 없어져야 맞습니다.
늘 당당하게 떳떳하게 나아가야 맞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잘못하면 이런 말을 듣곤 했습니다. 
부모님 얼굴에 먹칠하지 말아라.
가문을 들먹이면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요.

가문의 영광이 될 수도 있고
숨기고 싶고 감추고 싶은 자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요. 나의 삶이 예수님의 위상을 올려드리는 삶을 살아야지요.
물론 스스로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시지만, 하나님의 자녀라고, 아들이라고, 딸이라고 늘 말하면서
정작 그에 맞는 삶을 살고 있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늘 좋은것으로 주시려 하는데 
늘 받는 입장에서 뭐 더 없나 생각만 하며 살지 마시고
내가 어떤 것으로 하나님을 높여 드릴 수 있을까 늘 그런 삶을 살아갑시다.

아무도 지키지 않는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 지키려는 마음.
그것부터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의 모습이고
친구 되신 주님을 위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살아갑시다. 
그렇게 살아냅시다.
다른것 다 필요없습니다.

주님 한 분 친구 되신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