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성령충만 100서
성령충만 100서
기독교인들이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너무나도 똑같아서
아니 그 보다 더 심해서, 세상에 기준이 되어야 할 기독교인들이
그 기준점을 잃어버려서, 성경 말씀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데
세상속에서 답을 찾아서 빨리 빨리 해결해 나아가니
너무나도 급속도로 무너져 내리는 교회와 세상을 보며
다시 기준점이 되어 교회와 세상을 회복시켜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준비하였습니다.
제가 뭐가 되어서가 아니라 그런 생각들이 절실하게 들었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저 자신 조차도 성령충만한 삶을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하나씩 하나씩 예수님과 동행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누구라도 쉽게 접근하여
해 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유기성 목사님의 예수님 동행하는 일기를 쓰듯이
먼가 답은 제시해 주시지만 나 자신에게 적용하면 힘든 그런 하기 싫은 숙제같은 것이 아니라
작은 변화의 시작으로 인해 성령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그런 운동
그런 마음으로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신앙의 관점이니 참고만 하시고 각자 자신의 삶에 맞게
만들어 보시고 자신의 삶에 맞게 적용해 보세요.
어쨋든 기독교인인 내가 변해야 교회와 세상이 변합니다.
같이 기도하며 시작해 봅시다.
(29) 성령충만 100서 삶의 예배를 드립시다. 내가 있는 곳이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요즘들어 성경을 읽다가 바울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보는데 이런 내용이 나오더군요.
내가 심히 떨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나의 삶도
내 의지대로 내 생각대로 살고 전하게 될까봐 심히 떨었다.
성령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전하고 만나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내감정 내생각 내의지가 나를 사로잡아
하나님의 사역을 막을까봐 심히 떨었다라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떨어야 맞지요. 그 말이 사실이더라고요.
그런데 전혀 인식을 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게 해 주세요. 믿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며 삽시다.
말씀 안에 거합시다.
아멘. 아멘. 하지만 교회 밖에만 나가면 싹다 잊어버립니다.
참 신기한 일이지요.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전에 들었던 이야기였는데 요즘들어 그 내용이 깨달아지더라고요
영적인 기류, 영적인 공기말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예배를 드리니 영적으로 그나마 맑다고 표현하겠습니다.
그래도 예배 드리는 공간이니 찬양도 기도도 말씀도 선포되어지는 곳이니
그나마 아멘도 나오고 눈물도 나오고 은혜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외에 공간에서는요 다릅니다.
우리 집만 봐도 예배 빼고는 다 합니다.
티비시청, 스마트폰, 하고 싶은데로 말하고 행동하고
말 그대로 예수님만 빼고 다 믿는 우리집이라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예수님 믿는 가정이면 예수님을 늘 생각하고 하다못해 찬양이라도 늘 틀어져 있어야지요.
교회 안에서는 그래도 능력이 나타납니다.
위에 내용과 반복되는 부분입니다만 교회와서 우울하지는 않자나요.
물론 졸린것은 있습니다만 말씀을 듣다가 찔리는 일이 있어 불편한것 말고는
딱히 영적으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보이면 좀 그런 것이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집이나 사회 공동체는 그런 영적 분위기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막 말하고 상대방 헐뜻고 흠잡고 하는 것 같습니다.
영적인 기류, 흐름이 바뀌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하는 것이 맞는것 같습니다.
함부러 말하지 않도록 상대방을 배려하도록 우리는 늘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생활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만 주님을 바라보고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예배가 필요합니다. 성령충만의 또 하나의 방법, 삶의 예배를 드립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주님이 거하시고, 또 어떤 분의 말씀따라 자신이 장사하는 그 1평도 안되는 그곳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곳이라고 말하시며 생활하셨던 분의 말씀이 떠오르는 하루네요.
내가 거하는 자리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흔적이 남겨질 수 있도록
오늘도 성령충만의 삶을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