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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성령충만 100서

예수천당 불신지옥 2024. 11. 11. 06:39

(26) 성령충만 100서 

성령충만 100서

기독교인들이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너무나도 똑같아서
아니 그 보다 더 심해서, 세상에 기준이 되어야 할 기독교인들이
그 기준점을 잃어버려서, 성경 말씀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데
세상속에서 답을 찾아서 빨리 빨리 해결해 나아가니
너무나도 급속도로 무너져 내리는 교회와 세상을 보며

다시 기준점이 되어 교회와 세상을 회복시켜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준비하였습니다.
제가 뭐가 되어서가 아니라 그런 생각들이 절실하게 들었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저 자신 조차도 성령충만한 삶을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하나씩 하나씩 예수님과 동행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누구라도 쉽게 접근하여
해 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유기성 목사님의 예수님 동행하는 일기를 쓰듯이
먼가 답은 제시해 주시지만 나 자신에게 적용하면 힘든 그런 하기 싫은 숙제같은 것이 아니라
작은 변화의 시작으로 인해 성령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그런 운동
그런 마음으로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신앙의 관점이니 참고만 하시고 각자 자신의 삶에 맞게 
만들어 보시고 자신의 삶에 맞게 적용해 보세요.
어쨋든 기독교인인 내가 변해야 교회와 세상이 변합니다.
같이 기도하며 시작해 봅시다.

(26) 성령충만 100서 내가 그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갑자기 떠올라서 쓰기 시작했는데
벌써 4분의 1이 되었네요.
쓸 수 있을까? 내가 뭔데?
그러나 제 속에는 부족하지만 예수님과 늘 동행하며 살기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목회자의 자녀로 모태신앙으로 어렸을 때부터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온 저 였지만 그런 저의 모습 속에는 그 어디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만 느끼지 못했다라는 것을 이제 와서야 고백합니다.
늘 나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 늘 뒤에서 조심스럽게 바라보시던 하나님
물불 안가리고 천둥벌거숭이처럼 천방지축다니는 저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을지 참 부끄러울 뿐입니다.

모든 것이 노답이었던 제 인생에도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쨍 하고 해뜰날이 저에게도 온 것입니다.
물론 1년이라는 시간동안 제 모든 인생가운데 나누어서 경험되어져야 할 일들을
특별 케이스로 깨닫게 하시고 지금도 깨닫는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느끼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나 많이 들었었지만
저의 하나님은 아니셨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교회 안에 계시는 하나님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말이 사역이지 사역이라는 말이 무색하였지만 그래도 사역중에 방언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아동부 집회중에 목사님께서 교사들 중에도 방언 못 받은 분들 이 시간 기도하세요
방언을 달라고 기도하세요. 그러시길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구하여서 방언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때 뿐이었습니다.

사역이 지속되면서 하나님께서는 알게 모르게 성령 하나님을 나타내어 주셨습니다.
너무나도 무지하고 어리석어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도 깨닫지 못하고 
제 자랑인냥 삼으며 너무나도 부끄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 제 자신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가끔 두려운 마음이 있었지만 죄인줄 모르고 아니 죄인줄 알면서도 감추려고 애썼습니다.
제가 스스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에는
내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바라보며 의지하며 살아왔던 저의 모습을 보게 하셨습니다.

기도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바보였습니다.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고 애통해야 할 때 애통해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이 모든 것들에서 다시 첫걸음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쓰고, 예수님이 늘 함께 계심을 기억하려고 이곳 저곳에 예수님 사진을 붙여놓고
늘 예수님과 동행하는 성령충만의 삶을 살아가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우리에겐 전부인데 그 시간이 굉장히 많은 것처럼 우리들은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 어느순간 예수님이 재림주로 심판주로 나타나실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깨어 기도해야 한다는 말이 지금처럼 절실하게 느껴질 때도 없습니다.

코로나 기간을 통해 기독교가 큰 자숙함과 회개함으로 나아갔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더 약해지고 더 교회를 하나님을 떠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점점 힘을 잃어가게 되니 나라도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정말로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차 안에서 모두가 목적지를 향해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다 죽는 그 자리로 알면서도 누구 하나 고치려 하지 않고 바라보고만 있는 꼴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 하나가 앞장서야 할 때입니다.
희생의 마음 사랑의 마음은 기독교의 정신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인데
기독교인들 조차 지키려 하지 않고 피해버리면 누가 이 나라 이 조국을 살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다음세대들도 희망이 없고 소망이 없는 나라를 만들면 되겠습니까?
성령충만이 답입니다. 나의 문제를 알았으면 성령충만함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자리로 나아갈 때 길을 알려 주시고 답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