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나를 강하게(저 같은 인생도 예수님 붙들고 삽니다. 여러분들도 예수님 붙들고 사십시오)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 수 있게 주 내게 행하셨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내가 건너야 할 강 거기서 내 죄 씻겼네
이제 주의 사랑이 나를 향해 흐르네
깊은 강에서 주가 나를 일으키셨도다
구원의 노래 부르리 예수 자유 주셨네
닉 부이치치 송명희 시인 헬렌켈러
이 세상에는 약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약한 분들의 강력한 모습이나 메시지는
건강한 사람들을 고개 숙이게 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건강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늘 건강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반대이겠죠.
모든 것이 다 소중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건강한대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
약한 사람은 약한대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신앙생활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반대하는 가운데에서도 동생들을 데리고 교회를 찾습니다.
아마 부모님을 피해서 교회가 자신들의 놀이터처럼 여겨졌나봅니다.
교회에 와서는 모든일에 앞장서서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모태신앙에
목사님 자녀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정작 신앙생활이나 삶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교회 안에서나 대접받았지
교회 밖에서는 한 없는 루저인생이었습니다.
못생기고 뚱뚱하고 공부는 못하고
늘 아이들의 놀림의 대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을 부모님에게 쏟아냈습니다.
부모님 때문에 내가 이런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는 사고뭉치로 교회에서는 조용하고 착한척 하는 아이로
학교에서는 왕따 루저로 살았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에 신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자신감도 얻었습니다. 그 곳에서 날개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또 잘못된 삶을 살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아는척
직분을 이용하여서 함부러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데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성도들은 전도사라고 하니까 다르게 대접해 주었습니다.
어깨가 으쓱였습니다. 이래도 되나? 했지만 그 생각도 잠시
그 생활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말로는 늘 나는 목사를 할 수 없어? 하면 안돼? 하면서도
주변에서 만류하고 또 붙잡으면서 그래도 끝까지 해야지 하는 말에
마지못해 하는 것처럼 계속 이 길을 걸어갔습니다.
결국에는 말도 안되는 시간들을 보내고 지금 여기에 서 있습니다.
다행히도 저를 붙잡아 주신 목사님을 통해 제가 그래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강단에 서도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지난 날의 실수나 잘못들을 말이죠. 그리고 예수님만을 전하며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자고 저도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저의 솔직한 심정은 늘 성도들과 함께 이야기하지만 저는 지금 당장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없을 만큼 연약하고 죄많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이런 인생이라 할지라도 불쌍히 여기주시고 끝까지 붙들어 주시는 주님 바라보며
늘 마음 한켠에 주님을 모시고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고민하고 찔리지만 저지르는 실수들을 반복하면서도
계속해서 주님과 동행하는 성령충만의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인생도 성령충만을 외치며 살고자 합니다.
저보다 훨씬 더 나은 인생을 사시는 여러분 예수님을 믿읍시다.
예수님을 붙들고 삽시다. 그것이 연약한 내가 사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 붙들고 끝까지 함께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