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성령충만 100서 쇼츠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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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성령충만 100서 전체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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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성령충만 100서
성령충만 100서
기독교인들이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너무나도 똑같아서
아니 그 보다 더 심해서, 세상에 기준이 되어야 할 기독교인들이
그 기준점을 잃어버려서, 성경 말씀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데
세상속에서 답을 찾아서 빨리 빨리 해결해 나아가니
너무나도 급속도로 무너져 내리는 교회와 세상을 보며
다시 기준점이 되어 교회와 세상을 회복시켜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준비하였습니다.
제가 뭐가 되어서가 아니라 그런 생각들이 절실하게 들었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저 자신 조차도 성령충만한 삶을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하나씩 하나씩 예수님과 동행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누구라도 쉽게 접근하여
해 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유기성 목사님의 예수님 동행하는 일기를 쓰듯이
먼가 답은 제시해 주시지만 나 자신에게 적용하면 힘든 그런 하기 싫은 숙제같은 것이 아니라
작은 변화의 시작으로 인해 성령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그런 운동
그런 마음으로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신앙의 관점이니 참고만 하시고 각자 자신의 삶에 맞게
만들어 보시고 자신의 삶에 맞게 적용해 보세요.
어쨋든 기독교인인 내가 변해야 교회와 세상이 변합니다.
같이 기도하며 시작해 봅시다.
(6) 성령충만 100서 내가 참 그리스도인인지 확인하세요.
예수님을 만나면 벌벌 떠는 것이 당연합니다.
모든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주님을 만나야합니다.
빨리 만나도 좋지만 늦게 만나도 상관은 없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됩니다. 죽기전이라 할지라도요.
그런데 예수님을 만났다 할지라도
세상은 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눈, 코, 입, 귀, 모든 감각적인 것들을 자극하여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대적합니다. 성경에도 이유없이 대적하고 미워한다고 하지요.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면 너도 세상이 이유없이 대적하고 미워할거라고 하시지요.
그래도 나와 함께 가려느냐? 하십니다.
왕이 되셔서 부하가 되려느냐? 부귀 영화를 함께 누리려느냐?가 아닙니다.
나와 함께 죽을 각오가 되었느냐입니다.
죽어야 합니다. 죽어야 하는데 자꾸 살려고 하니 힘이 없습니다.
당당하게 말하고 힘있게 전해야 하는데 뭔가 구린것이 있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내가 불편합니다. 죽으러 왔는데 살려는 마음이 있으니 당당하게 힘있게 전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벌벌 떠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가 새롭게 되어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에게 빠져 들어가야 합니다.
홀리듯 주님이 말하실 수 있도록
생각이 잠식당하고 이제는 내가 내 몸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제는 내 생각이 아니라 주님이 생각하시고 움직이게 하십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표현을 이렇게 밖에 하지 못하겠습니다.
자꾸 마음속에 갈등이 생기고 주춤거리고 찔림이 있고 불안하고 두렵고
전에는 생각하면 바로 행동으로 옮겼는데
이제는 그렇게 살면 안됩니다.
다 맞지 않습니다. 아니오. 틀립니다.
이제는 더 이상 생각하지 마세요.
이제는 더 이상 행동하지 마세요.
하나님께 물으세요.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오늘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겠냐요?
음성이 들릴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하나님의 시선으로 주님의 마음으로 성령의 인도함 따라 살아가야 맞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벌벌떠는 것이 맞습니다.
도둑이 경찰을 만나면 벌벌떠는 것처럼
자신의 죄가 들통나서 두려운 것처럼
이제 주님을 만남으로 나의 죄를 다 청산하고
이제는 법대로, 원칙대로, 주님의 말씀만 바라보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기독교인으로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사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렇게 살지 못할거면 신앙생활을 접으세요.
기독교인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더이상 주님 얼굴에 먹칠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