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성령충만 100서
(62) 성령충만 100서
*성경출처는갓피아성경입니다
성령충만 100서
기독교인들이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너무나도 똑같아서
아니 그 보다 더 심해서, 세상에 기준이 되어야 할 기독교인들이
그 기준점을 잃어버려서, 성경 말씀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데
세상속에서 답을 찾아서 빨리 빨리 해결해 나아가니
너무나도 급속도로 무너져 내리는 교회와 세상을 보며
다시 기준점이 되어 교회와 세상을 회복시켜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준비하였습니다.
제가 뭐가 되어서가 아니라 그런 생각들이 절실하게 들었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저 자신 조차도 성령충만한 삶을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하나씩 하나씩 예수님과 동행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누구라도 쉽게 접근하여
해 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유기성 목사님의 예수님 동행하는 일기를 쓰듯이
먼가 답은 제시해 주시지만 나 자신에게 적용하면 힘든 그런 하기 싫은 숙제같은 것이 아니라
작은 변화의 시작으로 인해 성령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그런 운동
그런 마음으로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신앙의 관점이니 참고만 하시고 각자 자신의 삶에 맞게
만들어 보시고 자신의 삶에 맞게 적용해 보세요.
어쨋든 기독교인인 내가 변해야 교회와 세상이 변합니다.
같이 기도하며 시작해 봅시다.
(62) 성령충만 100서 (우리는 주인이신 하나님의 손에 만들어진 질그릇일 뿐입니다)
적절한 비유가 생각나지 않아 잠깐 사용하겠습니다.
우리 인생은 예수님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 마음, 감정, 의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것들은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왜요?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마십시요. 질그릇입니다.
로마서 9:15-24
15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고자 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6 그러므로 모든 것이 사람의 요구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17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파라오에게 "내가 너를 왕으로 세운 것은
너를 통해 내 능력을 나타내고, 내 이름을 온 땅에 두루 전하기 위함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또 어떤 사람은 완고하게도 만드십니다.
19 그러면 여러분 중에서는 나에게 이렇게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했다고 우리를 책망하시는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20 그러나 사람이 무엇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말대꾸한단 말입니까?
토기그릇이 자기를 만든 사람에게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소?"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21 토기그릇을 만드는 사람이 똑같은 진흙으로 귀하게 사용할 그릇과
천하게 사용할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단 말입니까?
22 하나님께서 진노를 나타내시고 그분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알리시기를
원하셨으면서도 멸망받기로 되어 있는 진노의 그릇들을 인내로써
참아 주셨다면 어쩌겠습니까?
23 또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 영광에 들어가도록 미리 준비하신
자비의 그릇들에게 그분의 풍성한 영광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면 어쩌겠습니까?
24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비의 그릇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유대인 중에서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 중에서도 부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