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성령충만 100서
(37) 성령충만 100서
성령충만 100서
기독교인들이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너무나도 똑같아서
아니 그 보다 더 심해서, 세상에 기준이 되어야 할 기독교인들이
그 기준점을 잃어버려서, 성경 말씀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데
세상속에서 답을 찾아서 빨리 빨리 해결해 나아가니
너무나도 급속도로 무너져 내리는 교회와 세상을 보며
다시 기준점이 되어 교회와 세상을 회복시켜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준비하였습니다.
제가 뭐가 되어서가 아니라 그런 생각들이 절실하게 들었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저 자신 조차도 성령충만한 삶을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하나씩 하나씩 예수님과 동행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누구라도 쉽게 접근하여
해 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유기성 목사님의 예수님 동행하는 일기를 쓰듯이
먼가 답은 제시해 주시지만 나 자신에게 적용하면 힘든 그런 하기 싫은 숙제같은 것이 아니라
작은 변화의 시작으로 인해 성령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그런 운동
그런 마음으로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신앙의 관점이니 참고만 하시고 각자 자신의 삶에 맞게
만들어 보시고 자신의 삶에 맞게 적용해 보세요.
어쨋든 기독교인인 내가 변해야 교회와 세상이 변합니다.
같이 기도하며 시작해 봅시다.
(37) 성령충만 100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삽시다.
내가 착하고 선하게 사는 것도
내가 내 유익과 이익을 챙기지 않고 남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도
성경에서 말하는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대는 것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 이름, 내 직위, 내 경험, 내 자존심
다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다른사람들을 위해서
늘 그리스도인으로서 깨끗하게 정직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나를 보며 사람들이 실망을 한다면
나의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말투, 행동, 표정, 결정
나의 모든 것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노출되어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나의 유익과 이익됨이 아니라 늘 상대방, 믿지 않는 사람들을 배려하며
살라고 합니다.
결국에는 착함이 악한 것을 이기는 것은 끊임없이 내 자아를 내려놓고
당신은 내 머리 위에 있습니다. 라는 인사를 하는 네팔 사람들처럼
그렇게 나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낮은 자리로 오셔서 죽기까지 하심으로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셨는데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셨는데
우리는 무엇을 양보하지 못하고 참지 못하겠습니까?
사람을 의식하며 행하는 외식의 모습이 아닌
정말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시면
그 생명의 귀함과 한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됩니다.
성령충만은 나를 내려놓고 상대방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럴때 상대방의 영혼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나는 죽어지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만 살아 역사하게 하소서.
늘 성령충만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