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30) 성령충만 100서

예수천당 불신지옥 2024. 11. 15. 11:33

(30) 성령충만 100서 

성령충만 100서

기독교인들이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너무나도 똑같아서
아니 그 보다 더 심해서, 세상에 기준이 되어야 할 기독교인들이
그 기준점을 잃어버려서, 성경 말씀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데
세상속에서 답을 찾아서 빨리 빨리 해결해 나아가니
너무나도 급속도로 무너져 내리는 교회와 세상을 보며

다시 기준점이 되어 교회와 세상을 회복시켜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준비하였습니다.
제가 뭐가 되어서가 아니라 그런 생각들이 절실하게 들었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저 자신 조차도 성령충만한 삶을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하나씩 하나씩 예수님과 동행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누구라도 쉽게 접근하여
해 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유기성 목사님의 예수님 동행하는 일기를 쓰듯이
먼가 답은 제시해 주시지만 나 자신에게 적용하면 힘든 그런 하기 싫은 숙제같은 것이 아니라
작은 변화의 시작으로 인해 성령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그런 운동
그런 마음으로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신앙의 관점이니 참고만 하시고 각자 자신의 삶에 맞게 
만들어 보시고 자신의 삶에 맞게 적용해 보세요.
어쨋든 기독교인인 내가 변해야 교회와 세상이 변합니다.
같이 기도하며 시작해 봅시다.

(30) 성령충만 100서 성령충만을 늘 신경쓰며 살아야 합니다.

자꾸 설명하려니 어렵습니다.
경험도 부족하고 설명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 가리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 이야기를 전에 드렸었는데
그렇게 일부분의 하나님, 내가 만난 하나님으로 제한이 되니
처음부터 개인적인 고백이니 참고만 하시라는 말씀을 드린 이유도 이런 부분들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만난 하나님은 이런데, 나의 성령충만, 성령인도는 이런데 할 수 있습니다.
내 삶에 만난 하나님의 한 부분, 또 다른 분의 하나님의 한 부분
장님들이 코끼리 일부분 들을 만져 코끼리를 소개 하지만 결국 다 모아지면 완전한 코끼리가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리나 코끼리는 코끼리이고 하나님은 또 다른 부분이겠죠.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 자신이 우리의 경험 만으론 제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공통적인 마음은 있을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 소망의 하나님이신 것은 모두에게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성경에 표현된 하나님이 나의 삶에 동일하게 임하여짐을 경험하고
그 하나님의 사랑과 그 하나님을 만난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 전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붙는것 같아서
어찌할 줄 모르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전했던 바울의 심정으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그런 변화가 있지 않겠습니까?

마치 방언을 처음 받았을 때 멈출 수 없는 시간들을 보냈던 것처럼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로 눈이 짓무를 때까지 내 의지대로 할 수 없었던 그 감격들
성령충만이 이렇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일평생 살아가면서 이런 하나님을 경험해야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 우리는 잘 살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지는것은 하나님을 우리 인생에서 만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동안 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이지만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준비? 대비?를 해야 하지요.
성령충만을 늘 신경쓰며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