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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성령충만 100서

김천북부교회(증산면) 2024. 11. 4. 10:03

(19) 성령충만 100서 

성령충만 100서

기독교인들이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너무나도 똑같아서
아니 그 보다 더 심해서, 세상에 기준이 되어야 할 기독교인들이
그 기준점을 잃어버려서, 성경 말씀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데
세상속에서 답을 찾아서 빨리 빨리 해결해 나아가니
너무나도 급속도로 무너져 내리는 교회와 세상을 보며

다시 기준점이 되어 교회와 세상을 회복시켜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준비하였습니다.
제가 뭐가 되어서가 아니라 그런 생각들이 절실하게 들었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저 자신 조차도 성령충만한 삶을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하나씩 하나씩 예수님과 동행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누구라도 쉽게 접근하여
해 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유기성 목사님의 예수님 동행하는 일기를 쓰듯이
먼가 답은 제시해 주시지만 나 자신에게 적용하면 힘든 그런 하기 싫은 숙제같은 것이 아니라
작은 변화의 시작으로 인해 성령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그런 운동
그런 마음으로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신앙의 관점이니 참고만 하시고 각자 자신의 삶에 맞게 
만들어 보시고 자신의 삶에 맞게 적용해 보세요.
어쨋든 기독교인인 내가 변해야 교회와 세상이 변합니다.
같이 기도하며 시작해 봅시다.

(19) 성령충만 100서 거룩함이 지속되는 그 날까지 오늘도 주님만 바라봅시다.

100가지는 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고 적어 보려고요.
계속 반복된 이야기입니다.

한가지 이야기를 100가지로 풀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성령충만의 결론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내 자아를 버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움직이고 지시하는대로 사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버벅 거리겠죠.
일상 생활에서 일일이 매 순간 하나님께 묻는거자나요.

뭘 달라고 하면 바로 가까이에 있으면 줄 수 있겠죠.
리모컨 달라 했을 때 줄 수 있죠.
차키 달라고 하면 줄 수 있죠.

그런데 그 리모컨으로 무엇을 보는가는 또 다르죠.
그 차로 어디를 가는가가 또 다르죠.

이게 참 불편하고 어려운 것이 많습니다.
말 할 때는 더 어렵습니다.
바로 바로 대답을 해야 하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바로 나오게 되니
쉽게 뱉어버린 말로 상대방을 불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 100가지를 계속 생각하고 있으니 또 생각나게 해 주시긴 합니다.
그런데 이 글 을 쓰는 저도 여간 불편합니다.
그냥 적고 있지만 적고 있을 수만 없습니다.

저는 예수님 사진을 생활하는 곳곳에 붙여 놓았습니다.
예수님이 저를 보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지나쳐 버리는 사진처럼 예수님이 이 곳 저 곳에 걸려 계십니다.
이게 무서운 것이지요.

함께 하는 사람이 늘상 같이있을 때에는 그 중요함을 모르는데
자리를 오랫동안 떠나 있으면 그 사람의 소중함을 느낀다고 하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면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우리내 속마음입니다.

겉으로는 거룩함을 강조하고 거룩한 척 하지만
금방 또 달라집니다.
상황에 따라 금방 변하는 것이 우리가 그렇게 자부하는 거룩함입니다.
그 거룩함을 말씀하신 것은 아니겠죠.

그 거룩함은 결단, 다짐, 이런 것이 포함된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과 약속한 것이니 다시는 저버리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와 결단.
그것이 거룩함으로 드러나는 것이겠죠.

그러니 마냥 내가 내 뜻대로 의지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바로 거룩함이 변질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지켜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도우심, 성령충만이 답입니다.
단번에 되겠습니까? 그래서 자꾸 바울이 삶이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그런 바울도 날마다 죽는다 하지요. 자신의 자아를 내려놓는 결단이요.
로마서 7장과 8장에서
자신의 속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세상을 향한 죄성으로 매일 싸운다 합니다.
시편의 말씀처럼 의인과 악인은 같이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죄 뿐입니다.

그러니 거룩함을 지켜 나가려면 온전히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늘 깨어서 하나님과 대화하듯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
영적인 민감함이 더 필요합니다.

엘리야가 도단성에서 종의 눈을 열어 보게 되었던 불말과 불병거가 보여야 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주님 만나기 전까지 나의 삶을 나의 신앙을 끌어 올리면 됩니다.
매일 주님을 만나는 훈련, 대화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일 주님을 부르기만 해도 됩니다. 지속이 중요합니다. 그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거룩함이 지속되는 그 날까지 오늘도 주님 바라보며 힘 냅시다.